코로나19로 인해 3년만에 열린 이번 ‘휘트니 비엔날레 2022’는 ‘Quiet as it’s kept’라는 제목으로 에드워즈(Adrienne Edwards)와 브레슬린(David Breslin)의 공동기획으로 오늘날 미국 경험의 도전, 복잡성 및 가능성을 반영하는 역동적인 작업을 하는 63명의 예술가와 집단으로 구성된 세대 간 및 학제 간 그룹을 특징으로 한다.
현대미술의 메카 휘트니비엔날레는 제프 쿤스(Jeff Koons),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잭슨 폴락(Jackson Pollock),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줄리안 슈나벨(Julian Schnabel), 데쿠닝(Willem deKooning), 재스퍼 존스(Jasper Johns),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 마크 로스코(Mark Rothko), 신디 셔먼(Cindy Sherman),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 조앤 미첼(Joan Mitchell) 같은 대가들을 배출하거나 초대했다.
휘트니 비엔날레의 역사는 소위 비엔날레 붐이 일어난 90년대 보다 훨씬 앞선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와 같은 비엔날레의 형식은 1973년 시작되었으나, 초기의 휘트니 비엔날레는 여전히 휘트니 미술관의 설립 목적인 미국 현대미술의 소개와 맥락화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30년대부터 미술관의 연례전 형식으로 미국의 젊은 신진 작가들을 소개했던 방식을 비엔날레로 전환한 초기 비엔날레 전시들은 유럽미술을 이식하여 형성된 현대미술의 중심을 미국으로 재편하고자하는 노력에 상당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지역적 한계를 가로지르는 소위 ‘글로벌화’된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미국현대미술’ 혹은 ‘미국작가’를 재정의하는가의 문제는 휘트니 미술관의 숙명과도 같은 과제이자 휘트니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중요한 쟁점이 아닐 수 없었다. 일부에서는 휘트니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혹은 ‘미국현대미술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재탕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다분하다.
앞서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는 지금까지도 가장 ‘정치적인’ 비엔날레 중의 하나로 언급되면서 휘트니 비엔날레에 대한 새로운 비평적 지평을 열어주었다.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의 기획에는 현재까지도 휘트니 미술관에 남아 남다른 기획력을 보여주고 있는 엘리자베스 수스만(Elisabeth Sussman, 수스만은 2012년 휘트니 비엔날레까지 적극적으로 휘트니 비엔날레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뉴 뮤지엄의 디렉터를 맡고 있는 리사 필립스(Lisa Phillips), 휘트니 미술관과 구겐하임에서 백남준에 관한 기념비적인 전시를 기획한 존 한하르트(John G. Hanhardt, 現 위싱턴 D.C. 스미소니언 미술관 필름 앤 미디어 아트 선임큐레이터), 그리고 텔마 골드(Thelma Golden, 1997년부터 현재까지 더 스튜디오 뮤지엄, 할렘 디렉터로 재직 중이다)가 참여했다. 인종, 젠더, 에이즈, 전쟁 등의 정치적인 문제들을 두루 다뤘던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가 비엔날레 역사상 가장 뜨거운 미술사적, 미술비평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은 당시의 리뷰나 기사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후 휘트니 비엔날레는 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동시대의 사회정치적 이슈들을 치열하게 다룬 기성과 신인 작가들을 두루 소개하는 한편, 전시의 형식적 측면에서도 휘트니 미술관을 벗어나 다양한 매체의 조각이나, 퍼포먼스, 설치작업들을 센트럴 파크나 파크 에비뉴 아모리와 같은 공간에 설치하면서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한편 이번 2022 휘트니비엔날레에서 미술, 문학, 도예, 퍼포먼스, 영화 등 다양하게 접근했던 한국계 작고 작가 차학경의 작품을 미국 뉴욕 휘트니미술관 5층에서 찾아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