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에 자리한 롱뮤지엄(Long Museum)은 단순한 사립 미술관이 아니다. 이곳에서 어떤 작가가 전시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곧 미술계의 방향을 가늠하는 신호가 된다. 최근 롱뮤지엄이 선택한 이름은 중국 동시대 작가 찌신(Ji Xin, 1987~ )이었다. 이번 개인전 《The Gaze of Pygmalion》은 2017년 이후의 주요 작업들을 집약적으로 선보이며, 단순한 작품 발표를 넘어 중국 미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 되었다.
롱뮤지엄에 전시된 찌신 작품
찌신의 작품을 직접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건 서구적 회화 언어의 강한 영향이었다. 르네상스나 바로크를 연상시키는 인체 묘사와 구도, 극적인 색채는 전형적인 유럽 회화의 문법을 떠올리게 한다. 얼핏 보면 ‘중국 작가’라는 정체성이 잘 드러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 화면 속 내러티브와 상징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분명히 중국 사회와 세대적 경험을 반영한 맥락을 품고 있다.
즉, 찌신은 형식적으로는 서구의 전통을 흡수하면서도, 주제적으로는 중국 사회의 긴장과 변화를 은유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단순히 ‘중국적’이라고도, ‘서구적’이라고도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성을 띤다. 바로 이 모호함이 그를 국제 미술 시장에서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중국 미술의 강점은 무엇보다 튼튼한 내수 시장이다. 중국 컬렉터들의 압도적인 구매력은 자국 작가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고, 젊은 작가들도 국내 무대만으로도 생존이 가능하다. 그러나 찌신의 경우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수억 원대 낙찰을 기록했고, 파리의 알미네 레쉬 같은 유럽 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이미 중국을 넘어 글로벌 무대에서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내수의 힘에 안주하지 않고, 국제적 담론에 뛰어든 것이다.
이번 롱뮤지엄 전시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이 미술관은 중국 사립 미술관의 위상을 대표하는 기관으로,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공간이 아니라 국가적 위상을 반영하는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한다. 찌신을 전면에 내세운 건, 곧 "중국 미술의 다음 세대는 이미 세계와 호흡하고 있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한국 미술계가 떠오른다. 한국에도 가능성 있는 신진 작가들은 많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시장에 머무르거나, 해외 진출을 ‘특별한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인 내수 기반이 없는 현실에서 세계 무대에 나서야 한다는 건 분명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치열하게 전략을 세우고, 레지던시·비엔날레·국제 갤러리 네트워크 같은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흥미로운 점은 찌신의 나이다. 그는 1987년생으로 올해 38세. 아직 40세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에 이미 롱뮤지엄 개인전을 열고, 경매 시장에서도 수억 원대 기록을 세웠다. 같은 세대의 중국 작가 양푸동이나 리우웨이가 국제 무대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을 생각하면, 찌신의 행보는 매우 빠른 편이다. 이는 중국의 강력한 내수와 사립 미술관의 지원, 그리고 그의 작업이 가진 동서 융합적 매력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반면 한국의 동세대 작가들을 떠올려보면 사정은 다르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이 국제 전시에 참여하고 있지만, 대규모 사립 미술관 개인전이나 경매 시장에서의 두드러진 성과는 상대적으로 적다. 내수 시장이 작은 만큼 해외로 나아가야 하지만, 그 과정이 체계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중국은 내수로 버티면서도 동시에 국제 무대를 공략한다. 반면 한국은 내수가 약하기 때문에 국제 진출이 절실하지만, 정작 움직임은 미약하다. 이 간극을 좁히지 않는다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국제 미술 시장의 빠른 변화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찌신의 전시는 결국 질문을 던진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계와 대화할 것인가?” 중국의 사례는 답을 강요하지 않지만,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내수와 국제,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안고 가야 한다는 것. 그 균형을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 한국 신진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예술은 결국 시장과 담론 속에서 살아남는다. 작품은 팔려야 하고,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중국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확보하려 하고 있다. 롱뮤지엄이 찌신을 통해 보여준 장면은 그래서 단순한 개인전이 아니라, 아시아 미술의 구조적 힘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그리고 한국 미술계에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도전 없이는 내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