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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근대 미술관] 장 엘리옹 회고전 'La prose du monde'(세상의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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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calier (계단), 1944,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L'escalier (계단), 1944,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한국뿐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장 엘리옹(Jean Hélion)이라는 근대 미술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근대 미술사를 점철했던 아방가르드의 물결에 끝까지 합류하지 않았던 게 큰 이유이다. 추상화가 유럽 미술계를 장악했던 2차 대전 후에 엘리옹은 주류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도 2004년 퐁피두에서 열렸던 장 엘리옹 탄생 100주년 기념전 이전에는 ‘장 엘리옹’이라는 이름을 많이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파리 근대 미술관은 지난 3월 22일부터 오는 8월 18일까지 엘리옹 회고전 ‘Prose du monde’(세계의 산문)을 열어, 다시 한번 그의 업적을 기리는 동시에 그의 작품을 더 많은 대중에게 소개한다.

엘리옹의 이력만큼 전시는 특이하다. 많은 근대 미술가, 특히 추상화가의 회고전은 대부분 시대순으로 작업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어떻게 구상화에서 추상화로 방향을 전환했는지, 그리고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후에는 어떻게 작업이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식이다.

마크 로트코, Untitled, 캔버스에 유화, 사진. 이소이 기자. 최근에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로트코 전시도 로트코의 초기작품인 구상화부터 시작했다.
마크 로트코, Untitled, 캔버스에 유화, 사진. 이소이 기자. 최근에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열린 로트코 전시도 로트코의 초기작품인 구상화부터 시작했다.

◆ 추상에서 구상으로

엘리옹 회고전은 정반대이다. 첫 번째 섹션인 ‘De la forme à la figure’(형식에서 형태로)의 첫 번째 전시실에 들어서면 몬드리안 풍의 추상화 작품이 눈에 띈다. 언뜻 보기에 엘리옹의 추상화는 초기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완숙한 화가의 작품처럼 보인다.

Composition(구성), 1932,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Composition(구성), 1932,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추상화 작품을 넘어 다음 전시실로 넘어가면 이번에는 추상과 구상 사이의 어디엔가 있을 법한 그림들이 눈에 띈다. 구상이라고 하기엔 어떤 형태가 있는 것 같고, 추상이라고 하기엔 형태가 구체적이지 않다. 어떤 작품은 추상화가들이 즐겨 썼던 제목인 ‘composition’(구성)을 제목으로 하며, 어떤 작품은 대놓고 ‘figure’(형태)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전시실의 마지막은 ‘figure tombée’(넘어진 형태)이며, 관객은 이 그림이 추상화가 아닌 구상화라고 짐작하게 된다.

Figure rose(장미빛 형태), 1937,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Figure rose(장미빛 형태), 1937,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작품 활동 초창기에 엘리옹은 추상화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30년 테오 반 두스부르흐(Théo Van Doesburg)와 레온 투둔지안(Léon Tutundjian)과 추상화 학파인 ‘Art Concret(구체 예술)’ 학파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 학파는 31년 해체 후 ‘Abstraction-Création’(추상-창작)이란 그룹으로 탈바꿈하며, 근대 미술의 아방가르드 시대를 장식한다. 엘리옹은 추상화 학파에 속해있었지만, 자기 작품에서는 구상의 여지를 많이 남겼다. 30년대 중후반 그림을 보면 제목에 ‘형태’(figure)라는 단어를 사용했을 뿐 아니라, 그리는 것도 신체,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1939년의 그림 ‘넘어진 형태’를 기점으로 엘리옹이 추상화에서 구상화로 넘어간다고 평가한다.

Figure tombée(넘어진 형태), 1939,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Figure tombée(넘어진 형태), 1939,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 추상 기법으로 표현한 구상화

다음 섹션(Entre réel et imaginaire(실재와 상상 사이에서), 1939 - 1951)으로 가면, 전 섹션에서 가졌던 짐작이 확신으로 바뀐다. 이제부터는 구상화만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자를 쓴 남성의 초상, 정장을 입은 남자, 신문을 읽고 있는 남자, 남자들 앞에 옷을 벗고 누워있는 여성, 머리가 꺾인 여자 등, 지금부터 보는 그림들의 형태는 쉽게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엘리옹은 추상화에서 썼던 기법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걸 볼 수 있다. 형태를 구성하는 부분을 모두 추상화에서 그렸던 방식대로 그렸기 때문이다. 추상화와 구상화는 서로를 함축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 그래서 추상은 구상에서 시작하며, 구상은 추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Grande scène journalière(일상의 멋진 장면), 1948,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Grande scène journalière(일상의 멋진 장면), 1948,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그림에 나오는 사물, 인물(호박, 우산, 여성의 누드, 신문, 정장 입은 남성 등)들이 상징 놀이를 구성하지만, 사실 이 섹션에 들어왔을 때 눈에 띄는 건 화려한 색감과 흥미로운 형태의 놀이이다. 색, 형태의 신나는 놀이를 뒤로하고 다음 섹션으로 넘어가면, ‘La parti pris des choses(사물의 편견), 1950-1967)’라는 섹션이 소개되며, 쇼윈도를 그린 두 그림이 관객을 맞이한다.

(좌) Mannequinerie d'argent(실버 마네킹), 1950-1951, 캔버스에 유채 (우) Grande mannequinerie(멋진 마네킹), 1951,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좌) Mannequinerie d'argent(실버 마네킹), 1950-1951, 캔버스에 유채 (우) Grande mannequinerie(멋진 마네킹), 1951, 캔버스에 유채, 사진. 이소이 기자

◆ 점점 떨어지는 긴장도

두 그림 모두 바로 앞 섹션의 놀이를 계속하며, 관객은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 작품을 만난다. 하지만 이 두 그림을 지나 같은 섹션의 다른 전시실로 들어가면 긴장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정물화와 아틀리에 그림은 조금 전까지 해왔던 놀이의 긴장감을 떨어트린다. 색감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형태가 주는 긴장감은 더 이상 느낄 수 없다. 미술관 벽에 쓰여 있는 설명에 의하면 엘리옹은 현실에 관심이 많았으며,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재(빵, 호박, 옷 등)로 다시 한번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였을지는 몰라도, 이 시도가 추상에서 구상으로 넘어갔을 때만큼 성공을 거둔 것 같진 않다. 이 섹션의 마지막은 소위 말하는 트립틱(중세 제단화에서 많이 볼 수 세 폭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말한다) ‘Triptyque du Dragon’(용의 트립틱)이 장식한다. 엘리옹이 계속해서 보여줬던 발칙함과 상징은 찾아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트립틱이 주는 웅장함과 숭고함의 느낌은 없다.

Typtyque du Dragon(용의 트립틱), 1967, 트립틱, 사진. 이소이 기자
Typtyque du Dragon(용의 트립틱), 1967, 트립틱, 사진. 이소이 기자

네 번째 섹션인 ‘Quartier libre(자유 지역), 1968-1980’에서는 엘리옹이 68혁명 이후 파리 시내를 그린 작품들을, 마지막 섹션 ‘À perte de vue(시력을 잃고), 1981-1983’에서는 시력을 잃은 엘리옹의 말년 작품들을 전시한다. 두 번째 섹션의 작품들이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긴장감은 계속해서 떨어져만 간다.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한 트립틱 작품 ‘Jugement dernier des choses(사물들의 최후의 심판)’와 전시장 바깥의 트립틱 작품 ‘Choses vues en mai(5월에 본 것들)’조차도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왜 엘리옹의 초창기 작품만이 미술계에서 인정받는지, 후기 작품은 인정을 못 받는지 알려주는 전시이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미술 전문지 꼬네상스데자르(Connaissance des arts)는 최근에 파리 근대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던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베르나르 뷔페(Bernard Buffet), 오르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에 비해서 장 엘리옹이 격이 떨어진다는 뉘앙스로 평을 하기도 했다.

Choses vues en mai(5월에 본 것들), 1969, 트립틱, 사진. 이소이 기자
Choses vues en mai(5월에 본 것들), 1969, 트립틱, 사진. 이소이 기자

전시 중반부터 점점 작품의 완성도나 긴장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럼에도 전시 자체는 흥미를 끌 요소가 아주 많다. 우선 앞서 언급한 대로 추상에서 구상으로 가는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다. 엘리옹이 여기저기 그려놓은 상징적 장치들을 발견해 나가는 것도 새로운 재미이다. 마지막으로 시각 예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각적인 재미, 색의 놀이를 즐기는 재미가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긴장이 느슨해지긴 하지만 엘리옹 특유의 색감은 초기부터 후기까지 모든 작품에서 유지된다. 비슷한 계열의 색을 쓰면서도, 색 사이에 미세하면서, 때로는 과감하게 차이를 두는데, 이 색의 놀이가 형태와 맞물려 쉴 새 없는 놀이를 만들어낸다. 다만, 엘리옹의 작업 의도가 색에 있지 않았다는 것, 중후기의 작업이 초기의 작업만큼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 때문에 엘리옹의 전시는 전체적으로 단순한 감이 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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