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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인터뷰] 은사시나무 톱밥으로 빚은 기호의 세계, 엄미영 작가

구글 선호 매체로 추가

아트바겐 2026, 300여 갤러리·2,000여 점의 작품들 사이에서 발견한 낯선 질감 - 작가 엄미영(GREENI)을 만나다

전국 작가와 갤러리 300여 곳이 참여해 2,0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아트바겐

artandbridge 2026
artandbridge 2026

2026. 앤디 워홀, 이우환, 마르크 샤갈 같은 세계적 거장들의 특별전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번 행사는 서울 송파구 엠아트센터에서 1부(6월 17일~21일)와 2부(6월 23일~27일)로 나뉘어 열리고 있다.

미술품 구매 경험이 없는 초보 컬렉터도 시작가의 30%부터 참여할 수 있는 서면경매 프로그램까지 마련돼 예술의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국 300여 개 갤러리와 작가들이 참여한 아트바겐 2026에서는 2,000여 점의 작품이 관람객을 만났다. 수많은 작품 가운데 기자의 눈길을 끈 작가가 있었다. 기호를 통해 관계를 탐구하는 엄미영(GREENI) 작가다.

아트바겐2026 전시-엄미영 작가 Greeni 
아트바겐2026 전시-엄미영 작가 Greeni 

멀리서는 숫자와 기호처럼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화면을 채운 독특한 질감이 먼저 시선을 붙잡았다. 물감이 아니었다. 화면의 질감은 물감 대신 은사시나무 톱밥을 활용해 구현됐다. 그 작품의 주인공이 작가 엄미영(GREENI)이다.

기호는 설명이 아니다

작품에는 콜론(:), 세미콜론(;), 방향기호, 말풍선, 숫자, 알파벳 같은 익숙한 부호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것들은 단순한 문장부호가 아니다.

"기호는 설명이 아니다. 생각이 시작되는 자리다."

Greeni

기자가 어떤 의미인지 묻자 작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는 작품을 통해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기고 싶어요. 같은 세미콜론(;)을 봐도
누군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읽고, 누군가는 '다시 시작된다'고 읽거든요.
저는 그 다름이 재미있습니다."

세미콜론-이어지는 숨의 의미
세미콜론-이어지는 숨의 의미

작가는 세미콜론을 '이어짐', 물음표를 '질문과 가능성', 느낌표를 '존재의 선언'으로 해석한다고 설명했다. 세미콜론(;)은 끝이 아닌 이어짐, 물음표(?)는 질문과 가능성, 느낌표(!)는 존재의 선언이다. 방향기호(〈〉∧∨)는 삶의 선택과 이동을, 말풍선은 보이는 말과 보이지 않는 생각의 간극을 담는다. 언어로 설명되기 이전의 감정, 관계의 흐름을 기호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되돌려 놓는 작업이다.

하나의 작품, 네 개의 이야기

전시장에서 유독 눈길을 끈 작품이 있었다. 《방향》이다.

방향 (Direction)크기: 61 × 50 × 4 cm (10호 F)재료: 은사시나무 톱밥(Aspen Shaving), 혼합재료(Mixed Media) on Canvas
방향 (Direction)크기: 61 × 50 × 4 cm (10호 F)재료: 은사시나무 톱밥(Aspen Shaving), 혼합재료(Mixed Media) on Canvas

"이 작품은 어느 방향으로 걸어도 됩니다. 위로 걸면 또 다른 그림이고, 옆으로 돌리면 또 다른 그림이에요."

작가의 말에 다시 작품을 바라봤다. 하나의 캔버스가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작품으로 읽혔다. 4방향이 각각 독립된 작품으로 성립하는 구조다. 작가는 작품의 방향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방향을 바꾸면 의미도 바뀌어요.

기호도 그렇고,

관계도 그렇고, 삶도 그래요."

➖, 부정의 기호가 아니다

 

엄미영작가의 기호 소품들
엄미영작가의 기호 소품들

대화가 깊어질수록 작가의 기호 해석은 예상을 계속 벗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는 긍정, '➖'는 부정으로 단순하게 읽어요. 그런데 기호 자체에는 선악이 없어요. 의미는 우리가 부여하는 거죠."

➖를 어떻게 읽느냐고 묻자 작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쉼표가 문장의 숨이라면, ➖는 생각의 여백이에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채워질 공간이고, 멈춤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숨 고르기예요. 잃어버림이 아니라 덜어냄이고,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선이에요."

그리고 덧붙였다.

"➖는 위도 아래도 아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가장 평등한 상태의 선이에요. 나는 그 선에서 관계를 생각해요. 만나기 전의 거리, 말하기 전의 침묵, 그리고 다시 이어지기 전의 숨."

작가는 이를 사람과 사람, 말과 말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공간으로 해석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말과 말 사이, 나와 세상 사이의 틈을 그는 기호라고 부른다.

엄미영 작가가 말하는기호는? - 슬로건 카피
엄미영 작가가 말하는기호는? - 슬로건 카피

그렇다면 '+'는요? 라고 물었다. 작가는 "'+'에 대한 해석은 다음 전시에서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나무는 잘려도 끝나지 않는다

작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붓 자국 대신 거친 결이 보인다. 은사시나무 톱밥이다.

ARTIST STATEMENT
ARTIST STATEMENT

"나무가 가진 힘이 좋아요. 잘려도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지잖아요. 가구가 되기도 하고 종이가 되기도 하고, 제 작업에서는 기호가 됩니다."

시간과 압력, 중력에 의해 톱밥이 만들어내는 우연한 흔적들은 계획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우연 속에서 인간관계의 생성과 변화 과정을 읽어낸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인간관계의 형성과 변화에 비유한다.

GREENI라는 이름도 그 믿음에서 출발했다. G(Grow, 성장) R(Relation, 관계) E(Emotion, 감정) E(Environment, 환경) N(Nature, 자연) I(Identity, 정체성)을 내포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GREENI는 자신이 지향하는 작업 세계를 담은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28년의 교실, 그리고 기호

작업의 뿌리를 묻자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28년간의 미술교육 현장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같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는 걸 배웠어요.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속도로 성장하죠. 작품 속 기호들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기호라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읽히길 바라요."

엄미영작가의 기호작품들
엄미영작가의 기호작품들

수십 년간 사람을 만나온 경험은 작업의 핵심 질문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작품은 조용하지만 그 안에서 이 물음은 끊임없이 흐른다.

기호는 관계다라고 말하며 전달받은 포트폴리오
기호는 관계다라고 말하며 전달받은 포트폴리오

그의 작업은 기호를 매개로 관계와 소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청남대로 이어지는 다음 기호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작품 앞에 섰다. 처음에는 숫자로, 부호로 보였던 것이 조금 더 오래 들여다보니 관계의 흔적으로 읽혔다.

2026 아트바겐에서 인터뷰한 엄미영작가를 만나다.
2026 아트바겐에서 인터뷰한 엄미영작가를 만나다.

작가의 다음 행선지는 청남대다. 오는 8월 말부터 9월까지 개인전을 앞두고 있다. 은사시나무 톱밥으로 구축한 기호의 언어가 새로운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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