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은 “전윤수 중국미술연구소 대표가 일본에서 환수한 약봉 김극일(1522~1585) 지석(誌石)을 최근 진흥원에 기증하기로 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지석은 밀암 이재(1657~1730)가 김극일 사망 143년 뒤인 1728년(영조 4)에 쓴 것이다. 지석은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무덤의 소재를 기록하여 묻은 도판이나 판석’을 뜻한다. 본관과 이름, 조상의 계보, 생일과 사망일, 평생 행적, 가족관계 등을 적어 무덤 앞이나 옆에 묻는다. 김극일 지석은 일제강점기 도굴돼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김극일은 경북 안동 명문가 자손이다. 청계 김진(1500~1580)의 맏아들이다. 김극일 동생 중 한 명이 학봉 김성일(1538~1593)이다. 대중에겐 조선통신사 부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일본이 침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낸 인물로 주로 알려졌다. 5형제 모두 퇴계 이황의 제자였다. 모두 생원 이상 시험에 통과했다. 극일·성일·복일 3명은 문과에 급제했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을 의성 김씨의 ‘오룡(五龍)’으로 불렀다. 표은 김시온(1598~1669)은 김극일의 손자다. 1546년(명종 1)에 문과에 급제해 형조좌랑, 경상도 도사, 평해군수, 예천군수, 성균 사성, 성주목사, 밀양부사, 사헌부 장령 등을 지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