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이는 해녀화가로 알려졌다. 수년째 제주 해녀를 그리면서 붙여진 수식어다.
해녀 화가란 수식어처럼 그의 주요 그림에는 해녀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의 그림 속 해녀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해녀의 모습과는 다르다. 밝고 희망 가득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마치 동화 같은 애니메이션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의 그림에는 애틋함, 따뜻함, 즐거움, 행복함, 그리고 낭만이 있다. 김재이 그림에 담긴 색다른 감정들이다.
이번 서울에서 여는 첫 개인전 <Meta-Portrait>에 선보이는 신작들 역시 제주 해녀를 주제로 삼았다. 작품의 크기, 다양한 내러티브, 변화된 구성과 표현 등에서 한층 깊고 탄탄해졌다. 소녀의 첫사랑 이야기가 담긴 <첫소랑>을 시작으로 강렬한 색채대비가 돋보이는 <칸나>, 휴대폰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사진 찍는 두 해녀를 그린 <물벗>, 거울과 화폭 속 자아를 마주하지 못하는 모습을 담은 <타인의 자화상>시리즈와 둥근 달 밤하늘을 유영하는 해녀를 담은 <모일 모월>과 <월량화>, 자전적인 그림<시계 공감> 그리고 소녀의 간절함을 담은 <수국소녀>까지 한편의 이야기처럼 제작한 구성이 새롭다. 특히 <타인의 자화상> 시리즈는 모델 해녀와 화가의 내면적 심리가 오버랩되면서 전작과 다른 중의성이 강해졌다. 전반적으로 해녀에 관한 앎이 깊어져 담긴 이야기와 그림도 그만큼 깊어졌다.
김재이는 미술 전공자가 아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2017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랜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선택한 지 이제 5년째이다. 화가의 삶을 시작한 지는 오래되지 않았지만, 기다림은 오랜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5년 동안 마치 미뤄두었던 오랜 과제를 한꺼번에 해치우듯 그림에만 집중하고, 미국과 국내에서 네 번의 개인전도 가졌다. 그는 소위 그림 그리는 기법이나 방식, 구도나 형태 등 미술대학에서 배우는 과정을 독자적으로 습득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화면의 조형성 탐구나 색채연구, 또는 새로운 재료의 확장이나 실험적 시도 등과는 거리가 있다. 대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한 경력을 바탕으로 화면구성, 인물표현 등에 자신의 조형 감각을 과감하게 발휘했다. 데생의 정확도나 재현에 의미를 두기보다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충실했다. 마치 내면에 응축된 욕망을 하나둘 꺼내듯 화면구도부터 색채, 인물표현까지 자기 생각과 감정에 솔직하다. 이것이 김재이 그림의 차별점이며, 그만의 개성 짙은 내러티브를 이어가는 힘이다. 그의 그림은 누구나 거부감 없이 다가설 수 있는 삶의 이야기를 지향한다.
그런데, 왜 해녀일까? 제주 해녀는 김재이에게 어떤 존재 의미일까?
과거 제주의 어멍(어머니)들 중 잠녀(潛女)가 많았다. 잠녀는 제주식 표현으로 ᄌᆞᆷ녀, ᄌᆞᆷ네, ᄌᆞᆷ수라고 한다. 모두 ‘잠수(潛水)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제주의 잠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잠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현대인에게는 잠녀보다는 해녀라는 용어가 익숙하다. 이제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 속의 해녀(잠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지만, 김재이는 그림으로나마 제주 해녀에 관심을 갖도록 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열었던 해녀 그림 전시를 계기로 해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라고 했던 어느 인터뷰 기사처럼 그의 그림은 제주 해녀에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한다. “여러 분야 예술가들의 노력으로 해녀가 자연 친화적인 전문 여성직으로 서서히 알려지게 된 것에 자랑스러움을 느낀다”라고 했던 말에서도 그가 제주 해녀 그림으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유가 묻어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제주 해녀의 삶과 이야기가 곧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에 있다. 그는 제주 해녀의 고단한 일상 속에 묻어둔 내면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누구나 즐겁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존재임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실제로 앞서 말했듯이 김재이의 그림 속 해녀는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늘 젊고, 건강한 모습이다. 실존하는 해녀를 작품의 모티브로 삼았지만, 현재의 모습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 예뻤던 순간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다. 현실에서는 오랜 물질로 이미 젊음을 잃어버렸지만, ‘나도 한때는....’이라는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을 모델 대신 회상하고, 추억하고 상상하며 그린다. 김재이의 해녀 그림이 여느 인물화와 다른 지점이다. 이는 신작에서도 확인된다.
수국 앞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해녀의 <첫소랑>은 그 자체로 사랑가득한 그림이다. 방금 물질해서 따온 오분자기를 손에 쥐고 서 있는 소녀의 모습은 설렘과 수줍음으로 가득하다. 화면의 절반을 차지한 분홍색 수국이 ‘처녀의 꿈’이라는 꽃말처럼 소녀의 진심을 대변한다. 소녀의 두근거리는 마음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듯 나뭇잎 사이로 얼굴을 감추고 있는 고양이는 우리(보는 이)의 마음 같다. 사랑하는 이가 빨리 나와 소녀의 진심을 받아주면 좋겠다. 첫사랑을 수줍게 기다리는 모습이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속전속결로 이어지는 신세대의 첫사랑과는 사뭇 다르다. 첫사랑은 다른 사랑을 만나든지, 세월이 흐르든지 언제나 비자발적 기억으로 떠오른다. <첫소랑>이 빛바랜 사진첩에서 꺼내든 해녀 할망의 옛이야기 같다면, <물벗> 그림은 현대적이다. 휴대폰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사진 찍는 모습이 영락없는 요즘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물벗은 해녀들이 물속에서 서로의 목숨을 지켜주는 짝을 일컫는다. 바닷속에서 믿고 의지할 것은 오직 자신과 함께 물질하는 물벗 밖에 없다. 사소한 오해와 편견들에 얽매이는 사이는 서로를 지켜주는 물벗이 될 수 없다.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다. 뭍에서도 물벗처럼 서로 이해하고 지켜주는 벗이 있는 삶은 행복하다.
그림에서 색은 보는 이의 즉각적인 감정반응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요소(요인)이다. 흑백사진이 컬러사진으로 바뀌면서 일으킨 사람의 감정반응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이 점에서 김재이의 회화 색은 그림 속 이야기를 전달하는 신호이며 표시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감정과 상징이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다. 파스텔톤의 부드러운 색조가 주를 이루는 그림도 있고, 열정적인 색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그림도 있다. <칸나>가 후자에 속한다. 물소중이 차림의 해녀를 중심으로 화면이 색으로 양분되어 있다. 칸나의 초록색과 물결처럼 휘날리는 검은 머리의 붉은 배경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인물이 중심이지만, 노란 꽃 칸나와 열정의 온도 같은 붉은 배경이 해녀의 꿈과 마음을 상징한다.
이번 전시 작품들 중 가장 주목할 그림은 <타인의 자화상> 시리즈이다. <Meta-Portrait>를 전시 타이틀로 내세운 의도와 함께 작품 의미를 반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자화상1>의 그림 속 모델은 3대째 해녀를 하는 집안의 딸이다. 그러나 그림 속 인물에서는 해녀라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여타 해녀 그림보다 화면구성과 분위기,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옷차림 등에서 차이가 있다. 사실 작가의 말을 듣기 전까지 그림만으로는 쉽게 해녀라는 인상을 받기 어렵다. 타인의 자화상 시리즈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화면 속 해녀(모델)의 등문신이다. 불사조는 실제 모델의 등문신이고, 목단은 작가의 창작이다. 문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면 위쪽의 반사된 거울에 비친 등을 보면 혹등고래 문신이 보인다. 결국, 상처투성이 혹등고래와 불멸의 새를 새긴 문신은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의 몸과 마음을 대변한 표현으로 읽힌다.
거울 앞의 모델(해녀)은 정작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느낌이랄까. 우리가 거울을 볼 때, 현실의 자신과 거울 속 자신은 동일인이지만, 자신이 꿈꿔왔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은 같지 않을 때, 그리고 문득 거울 속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때 자신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눈을 감고 있는 표현은 거울 속 모습을 외면(혹은 부정)하고 싶은 심리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