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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기억의 흔적 •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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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이 여행했거나 가본 장소의 장면/풍경/사물 등을 일종의 재현 작품의 주제나 소재로 삼는 것은 흔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박소연의 작품은 이 같은 단순한 재현과는 다르게 그 차원을 달리한다. 그녀는 그녀가 직접 경험한 장소에 대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포착하고, 기억하며, 살려내어, 기록함으로써 영원히 살아 있는 추억으로 만든다. 이를 위해 평면/오목/볼록 원, 다면/다면중첩 입체 등을 사용한다.

그녀가 처음 기억한 풍경은 어린 시절 걸었던 골목길이었다. 그녀는 그 골목길에서 보이지 않지만 있음직한 그래서 신비하게 감지되는 중심을 느꼈었다. 그것이 그녀만의 독특한 작품 형식인 오목원형태의 도자에서 그 중심점이 되었다. 볼록원 도자에서 그 중심은 부풀어져 밖으로 확산되어 나온다.

오목/볼록원 작품의 한계는 체코유학시절 다면체를 실험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벗어날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한 장소의 장면/풍경/사물을 기억하고 회상할 때, 그 이미지들은 사진이 찍어내는 것과 다르다. 기억 속의 것들은 제한적이어서 그 형태가 분명하거나 명확하지 않고 특정 단면만 두드러지거나 때론 굴절된다. 이 같은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다면체가 사용되었다. 표현의 신세계를 열었다.

마음이 경험된 장면/풍경의 전부를 회상하느냐 아니면 그 일부만을 회상하느냐에 따라 한 개 장면이 다면체의 전체 면을 차지하느냐 아니면 각각의 면에 서로 다른 기억의 파편들이 묘사되느냐가 결정된다. 즉, 어떤 것이 의식의 층을 치고 올라오느냐에 따라 그 기억의 흔적이 재현 이미지로 남게 된다. 다면체 전체 위에 한 개의 장면/풍경 이미지가 있다면 그 다면체의 꺾인 표면은 동일한 장면/풍경을 다른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기억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보게 된다. 피카소가 눈에 보이는 3차원의 대상물을 2차원에 입체로 파편화시켜 추상화하려했다면, 박소연은 그 발상을 역으로 이용했다. 피카소는 3차원 대상을 2차원 평면에 옮기면서 사물대상을 입체로 잘라 단순화시킨 후 그래서 한 대상을 다방면에서 본 개별의 모양들을 한 곳에 평면화하였다고 한다면, 그녀는 추상적으로 생각에 존재하는 기억 속의 장면/풍경을 3차원의 다면체위에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한 개의 기억 이미지를 다른 방향에서 본 듯 각진 3차원의 다면구성입체로, 때로는 동일한 기억 이미지들의 서로 다른 단편들이 한 개의 서로 다른 면들 위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된다. 그녀의 기억을 재생하는 방식은 감히 피카소의 발상을 역이용한 매우 창조적 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입방체 두 개가 마치 접붙여 진 듯 보이는 중첩입방체는 각각의 면에 동일한 장면/풍경을 서로 다른 시각에서 본 단편적 이미지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은 동일한 장면에 대한 기억의 흔적의 수가 증가되어 더 다양하게 파편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형태의 여러 개의 다면체들이 층을 이루고 있다면 그것은 동일한 장면/풍경에 대한 기억과 회상의 깊이가 그 층의 수만큼이나 깊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작품제작 방식도 작품의 발상만큼이나 혁신적이다. 매체의 포스트모던적 사용법이다. 매체의 다양한 예술 장르를 결합한다. 작품 이미지를 확보하기 위해 맨 먼저 사진기를 이용한다. 사진으로 남긴 장면/풍경 이미지를 디지털기기에서 조정하고 사용될 이미지를 확정한다. 확정된 이미지는 판화의 실크스크린을 통해서 도자판 위에 인쇄된다. 인쇄된 이미지의 평면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조각의 부조 효과를 첨가한다. 선을 수정하고 입체감을 준 결과, 형태의 명확도와 입체적 효과를 획득한다. 확보된 3차원적 이미지에 채색을 입혀 기억된 장면/풍경 이미지에 서정적이며 회화의 재현적 효과를 얻어내었다. 건조된 도자표현에 유약을 입혀 다시 도자작품임을 입증한다. 이처럼 그녀는 도예, 사진, 판화, 조각, 회화, 등의 다양한 예술의 장르를 종합하여 매체의 장르를 넘나드는 끊임없는 실험을 감행해서 결국 포스트모던 예술제작방식의 사용에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그녀의 도예작품에는 특정 장소의 장면/풍경/사물에 대한 애정 어린 추억이 있다. 어린 시절 느꼈던 모호했던 감수성과 여행했던 유럽의 정취가 물씬 흘러나온다. 게다가 현재에서 과거를 회상해보고 환기시켜보는 매력이 있다. 평범하게 지나칠 수 있는 과거의 한 순간 순간이 단순한 사진이나 스케치가 아니라 직접 제작한 자기만의 고유하고 유일한 3차원속의 이미지로 영원히 포착되어 예술로 재탄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녀가 사용한 탁월한 발상의 전환과 끊임없는 제작 매체의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등장할 그녀의 작품에 벌써 기대와 관심이 기울려진다.

글. 이정숙 (홍익대학교 초빙교수)

<편집자 주 : 본 미술 평론은 독자들의 작품 이해도를 높이고 미술 정보 전달을 위한 비상업적인 목적입니다. 저작권은 평론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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